악의 평범성 - 루카 9,43-45에 대한 단상
그때에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While everyone was amazed at all that he was doing, he said to his disciples, "Let these words sink into your ears: The Son of Man is going to be betrayed into human hands." But they did not understand this saying; its meaning was concealed from them, so that they could not perceive it. And they were afraid to ask him about this saying.
어젯 밤에 본 영화 '한나 아렌트'에서 아렌트는 생각을 멈출 때 얼마나 커다란 악이 자행될 수 있는지를 역설했다. 더 큰 맥락을 놓친 때, 아니 내려 놓은 채, 자기 자신에게 모든 생각이 집중되고 타인과 사회 전체를 바라보는 것을 거부하며 소시민적으로 살아가는 태도. 짐짓 무해한 듯이 보이는 듯한 이 태도가 자칫하면 거대한 악과 결부되어 개인이 그 악의 톱니바퀴로 전락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I saw the movie 'Hannah Arendt'. In the movie, Arendt stressed how a great evil could be perpetrated if thinking stops. My understanding is that a seemingly harmless attitude of Kleinbürger, who does not care about the bigger context of his surrounding society and environment, and who concentrates all his 'thoughts' on himself can make a person a mere cog that functions for a greater evil.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문득 예수님께서 왜 당신이 인간들에게 '배신'당하실 것에 대해 이토록 강조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어서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 떠오르면서, 인간이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이 단순히 적극적인 결심에 의한 선택인 것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악을 행하려는 의도를 통해서 예수님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내부에 깊이 자리한 악의 뿌리깊은 속성이 예수님을 거부하게 만드는 '필연성'마저 낳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인간의 죄성은 결코 심오할 수 없는 '평범성' 때문에라도 '심오'한 것이 되고 말았다... 예수님은 우리의 의식적인 노력만으로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죄성을 통찰하신 것이리라.
Reflecting on today's Gospel, I was wondering why Jesus stressed so strongly on human's 'betrayal' towards him. Then the phrase, 'the banality of evil' coined by Arendt, came to my mind and I thought the human betrayal to Jesus was perhaps not meant to be something conscious and intentional. We, humans, betray Jesus perhaps not out of our conscious choice but due to a certain 'necessary condition' caused by the Fall. This deep-rooted sinfulness... Our sinfulness is deep and persistent because of its banality... Jesus was insightful of our sinfulness which is too overwhelming for our own attempt to overcome it.
하지만, 그러한 지적에 그치고 만다면 결코 복음일 수 없다. 과연 말씀이신 예수님 당신이 우리에게 오신 것 자체가 복음이다. 인간이 당신을 거부할 것을 아시면서도 예수님은 오셨다. 평범하고 '찌질한' 악의 힘이 당신을 거부하고 농락할 것을 아시면서도 예수님은 오셨다. 그것은 사랑이다. 당신 스스로를 약하고 상처받을 존재로 내려 놓으시면서 악의 한 가운데로 오신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은 점차 인간을 죄성에서 구해 주시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주실 터이다.
However, if that is the end of the story, it cannot be a 'Good News'. The fact that Jesus, the Word of God, came to us is already a Good News. Jesus came in the full knowledge of the eventual betrayal from the human beings. He came to us in the full knowledge of banality and cowardice of the power of evil which will deny and ridicule him. That is LOVE. A love that sets himself down as a vulnerable being. And that love would soon save humanity from the sinfulness and bring us back to our genuine self as Imago Dei.
우리가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면, 그리고 동시에 예수님의 사명을 위해서 파견받는다면, 나 역시 거부당하고 무시당하고 상처받는 곳으로, 나의 갈릴래아로, 주님께서 부르시는 곳으로 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를 위해 몸과 마음을 준비시켜 주실 것임을 믿으면서.
If we are saved by Jesus through his life, death, and resurrection, and at the same time are sent on his mission, I must also be able to go to my 'Galilee', where I have to risk being denied, ignored, and ridiculed. To be able to go on a mission where God calls me, I believe he will prepare myself as 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