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9 April 2013

수도회와 NGO - Jesuits and NGO

아태 지역구 개발회의 참석차 한국에 오신
콜롬비아 출신 Jorge Eduardo Serrano-Ordonez 신부님을 잠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I had a chance to meet Fr Jorge Eduardo Serrano-Ordonez SJ
who were visiting Korea for development meeting for AP assistancy.

그분께 'development'의 의미에 대해서 여쭈었는데,
그분의 말씀을 자구대로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미국에서 사용하는 의미는 단순하게 무엇을 짓는 것이 아니라
상호 관계를 형성하고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셨던 것 같다.

I asked him about the meaning of the word 'development'.
I cannot remember what he said word by word,
but as far as I can recall, he said that especially in the meaning
that is usually understood in the U.S.
'development' means to build a relationship and share with others
instead of just constructing buildings.

한편 예수회원으로서 사회 사도직을 하는 것과
일반 사회의 NGO 활동이 어떤 차이를 지니는가에 대해서 여쭈었는데,
수도자로서 하는 활동은 결국 하느님 왕국을 건설하는 데에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NGO 활동과 차이를 지닐 수 있다고 하셨다.
즉 상대방이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도움을 받고 자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상대방의 삶에 복음적 가치가 자리잡을 수 있게 하는 것까지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활동 목표라는 말씀이시다...

I also asked him about the differences between social apostolate of Jesuits
and the civil NGO works.
He says that the aim of activities by the religious is in the end
to build the Kingdom of God and that can be a difference between those two.
That is, we are not satisfied with meeting beneficiaries material needs,
but we want to go further where we can help them live in an environment
in which Gospel values are alive.

궁금한가? - Do you have questions to your loved ones?

지난 주 청년토크에서는 서울대교구 최용진 신부님께서
청원기도에 대한 강연을 해 주셨다.
신부님 강연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지만
많은 사람들이 더이상 물음표를 던지지 않고 느낌표를 찍는다는 것...
상대방에 대해 궁금해하고 그 사람의 생각과 바램을 헤아려 보려고 하기보다는
이미 생긴 선입견에 의한 답을 내리고 단정을 짓는다는 것...

Last week in 'Young people's talk',
Fr Choi Yong-Jin from Seoul Arch Diocese held a talk about petition prayers.
He says we put up a question mark to those we love
but after a while many of us put up a exclamation mark instead of question marks.
That means we are not interested to know about others anymore
and we just make judgement towards others based on our prejudice.
Asking questions means we are interested in them and we want to know about them.

기도에서도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에 대해 얼마나 궁금해하고 있는가
물어보라고 말씀을 하셨다...

He asked us how much we are interested in God... whether we ask questions to Him
about how He feels and thinks...

Monday, 1 April 2013

빈 무덤(요한 복음 20,11-18) - The empty Tomb(Jn 20,11-18)

Meanwhile Mary stayed outside near the tomb, weeping.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빈 무덤 앞에 서서 울고 있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은 더 이상 그녀 곁에 계시지 않으니 희망도 기쁨도 사라졌지만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그 자리에 머물러 자신의 슬픔과 허탈함을 직면하고 있었다.

Mary of Magdala was weeping in front of the empty tomb and she was there because she loved Jesus so much. Jesus died on the cross and was no more with her. There remained no more hope and joy, but her love for Jesus made her stay near the tomb and face her own sorrow and dejection.

매년 찾아오는 부활이 지났다. 그런데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까. 아직도 빈 무덤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aster has come as usual in this time of the year. But did I meet the resurrected Jesus? Am I not still just looking at the empty tomb?

마리아가 자신의 어두움, 즉 빈 무덤을 지키고 섰을 때, 그녀는 울고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무덤 안을 들여다 보았다 she stooped to look inside (Jn 20,11)'.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알려주는 천사들을 보았다. 어쩌면 나는 빈 무덤 앞에 서서 울고 떼를 쓰기는 할지언정 그 안을 깊이 들여다보기를 회피하는지도 모른다. 자꾸만 다른 일에 몰두하고 다른 일에 관심을 쏟으면서 애써 나의 어두움을 제껴 두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언젠가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부드럽게 나를 부르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When Mary was keeping vigil near at her darkness, or the empty tomb, she was not just weeping but she 'stooped to look inside (Jn 20,11)'. And she saw the angels who heralded her Jesus' resurrection. Perhaps, I may be standing in front of the empty tomb, weeping and nagging. But I may not be trying to look inside the tomb. I may be distracting myself by doing and indulging in other things. Even so, would I hear the voice of Jesus some day calling me gently?

부활의 체험은 스스로 노력해서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빈 무덤 곁을 지키고 서는 것, 그리고 그 안을 부단히 들여다 보는 것은 나의 몫이다. 직접 오셔서 나를 부르시고 부활의 따스함으로 내 삶을 채워주시는 것, 그것은 그분의 몫이요, 그분이 주시는 선물일 따름이다.

Easter experience must not be something you gain with efforts. The only thing you have to do is to keep vigil and to look into your own empty tomb out of love for Jesus. It is His choice and His gift that He Himself comes and calls me filling my life with the warmth of resurrection.

양곤의 추억 - Memories from Yangon

내가 일하던 Campion Institute의 farewell party 중에...
Director Fr Toto와 예수회 동료 Br Xavier























2년 동안 실습을 한 미얀마 양곤...
지난 달, 실습을 마무리하면서 많은 이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한 분 한 분 감사한 분들...

2 years regency in Yangon, Myanmar...
Last month, I had to say lots of good-byes.
I thank each one of them...

무엇보다도 귀국하기 전 얼마 동안이나마
미얀마의 다른 곳들을 다니며
보다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은
분에 넘치는 선물이었다.

Just before I returned to Korea,
I had an opportunity to visit other parts of Myanmar
so that I could see, hear, and reflect on different things.
It was a gift more than I deserve.

이제 귀국한 지도 1주일이 넘다 보니
양곤의 추억도 저멀리 사라져 가는 것만 같다.
여기에서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도 자꾸 생기고
너무도 편리하고 세련된 한국 도시의 생활에
다시금 익숙해지고 말았다.

Now that more than a week passed by since my arrival in my home country.
And the memories in Yangon seem to gradually fade away.
I see things I have to do and things I would like to do in my daily life.
And I am accustomed to such a convenient and sophisticated urban life in Korea.

2년 전 실습을 떠날 때,
나는 가난과 사랑의 체험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가끔 문화와 언어의 장벽,
그리고 내 칠칠치 못함으로 좌절이 밀려올 때,
나는 내가 가진 보잘 것 없음의 가난함과,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을 줄 수 있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내 자신을 원망스럽게 바라보곤 했다.
'가난'과 '사랑'의 체험이기는 한데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체험이라고
하느님을 원망했던 것이다.

When I was leaving for regency 2 years ago,
I wanted to have an experience of poverty and love.
However, whenever the waves of discouragement and frustration overwhelmed me,
I used to witness with regret the poverty of my lowliness,
and the situation I was at where I had to learn to give love instead of being loved.
It was an experience of 'poverty' and 'love'
but in an opposite way than I expected, I grumbled to God.

하지만 실습기를 마치고
지인들과 작별하고 그곳에서의 추억을 접어두고
서울에 돌아와 이 글을 쓰는 지금...
난 정말 내가 바라던 방식으로
'가난'과 '사랑'을 체험하고 왔던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But now after I finished my regency,
after having said many farewells to my friends,
after tucking away memories there into the drawers of my mind,
I am writing this in Seoul...
And I come to think that I experienced 'poverty' and 'love'
in a way exactly that I expected.


물론 내 자신의 가난함도 보았고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할 줄 알아야 함도 배웠다.
하지만 나는 하느님 앞에서 나와 이웃의 가난함 안에서도
우러나오는 부유함도 보았고,
그리고 내 주변의 형제자매들로부터 많은 사랑도 받았던 것이다.


Of course I saw the poverty of my lowliness
and I learned the need to love before waiting to be loved.

But I also saw richness of God that comes out of poverty in me and my neighbours.
And I was 'loved' by my fellow brothers and sisters.

이 소중한 기억들을 잊지 말자.
그리고 삶에서 가끔 축 쳐질 때는 다시 되새기자.
내 가난함 안에서 주님의 풍요로움을 보고
내가 사랑함에서 다른 사람에게 이미 사랑받고 있었음을 깨닫자.
그리고 포기하지 말고 주님 안에서 나아가자!

Let's not forget these precious memories.
Remind me of these memories whenever I feel down.
Remember that I saw His richness in poverty
and that I could realise I was being loved when I first loved others.
And let me not give up but step forward in our Lord!